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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주년 기념식

창립 10주년 기념사

2008년 2월 15일, 아사달이 창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아사달의 전 직원과 가족 및 초대 손님들이 서울 여의도 63빌딩 코스모스 홀에 참석하신 가운데 '(주)아사달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습니다. 이 날 (주)아사달 서창녕 대표이사께서 기념사를 하셨습니다. 아래에 기념사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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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달 창립 10주년 기념사 」

안녕하십니까? 주식회사 아사달 대표이사 서창녕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오늘은 1998년 2월 15일 제가 ‘아사달인터넷정보회사’라는 개인회사를 설립한 날로부터 정확히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아사달 창립 10주년을 맞아 아사달 직원들과 가족들 그리고 손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함께 축하하는 오늘은 우리 모두의 즐거운 생일잔치 날입니다.

아사달이 지나온 10년

아사달이 지나온 지난 10년의 역사는 도전과 성장의 10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꿈에서 시작한 아사달은 이제 회원 150만 명, 직원 140명, 매출 60억 원의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오늘 이렇게 성장한 아사달을 보고 있으니 새삼 가슴이 뭉클해지며 지난 10년의 세월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아사달 개인회사 시절

1998년 2월 15일 제가 아사달을 처음 만들 때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었으며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단지 미래에 대한 꿈과 불끈 쥔 두 주먹뿐이었습니다. 당시 만 29세의 젊은 청년이었던 저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였으며, 매일 밤 두근거리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책에서 배운 서툰 솜씨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좋은 도메인 이름을 등록하면서, 한 걸음씩 아사달이라는 회사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무실이 따로 없어서 신혼집이었던 아파트 한쪽 방을 사무실로 사용했고, 자본금도 없이 개인용 컴퓨터 1대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사업을 시작했냐?”고...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할 필요가 없는, 장래가 보장된 젊은이였습니다. 게다가 제 아내 이종원은 경희의료원 정형외과 의사로서 고소득이 보장된 전문직 종사자였습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하기에는 제가 발견한 인터넷 세상이 너무도 넓고 컸습니다. 그 유혹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막 시작된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기회의 땅에 ‘아사달’이라는 깃발을 꽂고 싶었습니다. 아침의 땅 코리아(Korea)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에 인터넷의 밝은 빛을 비추는 글로벌 회사를 만들겠다는 큰 꿈을 꾸었습니다. 저의 이 꿈이 한 사람의 꿈으로 그치지 않고, 열 사람, 백 사람의 꿈이 되어 오늘날 아사달이라는 회사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사달 주식회사 설립

아사달이 도약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2000년 1월에 시작한 .COM 도메인 등록 사업이었습니다. 2000년 초 한국에 인터넷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도메인 등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었던 저와 제 아내는 밤낮 구별 없이 도메인 등록 신청서를 처리했지만, 물밀듯이 밀려드는 고객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황이었습니다. 은행 통장에는 하루가 다르게 돈이 수북이 쌓여갔지만, 업무에 치여 끼니를 거른 적도 많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습니다. 주말도 없고 휴일도 없었습니다. 정말 “바빠 죽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 상황을 개선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에 직원을 뽑자!”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이로써 저와 아내는 미국에 있고 직원들은 모두 한국에 있는 이중적 조직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사달은 이미 회사 설립 초기부터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글로벌 회사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국제전화를 통해 한국의 직원들과 업무연락을 취했으나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국제전화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직원 게시판을 만들고 자신의 업무를 간략히 보고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일일업무보고 게시판의 시작입니다. 한국의 직원들이 늘어나고, 사무실도 얻고, 고객전화상담도 하면서 아사달은 더 이상 개인회사로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마침내 2000년 4월 14일 ‘아사달인터넷주식회사’라는 법인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이로써 아사달은 초기 가족 중심의 개인회사에서 벗어나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열린 기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사달 주식회사 설립

회사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미국과 한국으로 분리된 이중조직으로 인해 업무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마침내 저와 아내는 2001년 5월 한국으로 귀국하여 회사 업무에 매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귀국 직후 회사 사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무실은 반지하층이었는데,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여름이면 벽에 습기가 찼습니다. 게다가 제 방은 귀국 전에 흡연실로 사용되어서 벽과 창문이 온통 누런 담배 연기로 찌들어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남녀공용으로 사용했는데 문짝이 떨어져나가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볼일(?)을 봐야 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었더라면 당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귀국 직후 저는 제 모든 열정과 노력을 회사 업무에 투입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했고, 저녁 식사 이후에도 매일 야근을 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회사 바로 앞 10분 거리에 집을 마련했고, 식사 시간도 줄이기 위해 점심과 저녁을 사무실로 배달해서 먹었습니다. 밤 12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는 새벽 2시, 아니 새벽 5시까지 일을 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하루는 깜빡 졸다가 눈을 떠 보니 사무실 시멘트 바닥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는데 그 위에 쓰러져서 잠을 잔 날도 있었습니다. 당시 저와 함께 고생했던 신동명, 이돈선, 김종헌, 이영화 등 그 때 직원들의 이름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2002년 3월 1일 인터넷제국의 웹호스팅 사업을 인수했고, 4월에는 ‘한국도메인기업협회’와 ‘한국웹호스팅기업협회’를 설립하여 부회장사가 되었으며, 7월에는 ‘공인 .KR 도메인 사업자’로 선정되어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5억, 2001년 5억이던 매출이 2002년 12억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고, 2003년에는 27억으로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직원 수도 2001년에 10명 정도였는데, 2002년 20명, 2003년 35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대외적 인지도도 높아지고 협력관계도 좋아져서 정보넷, 블루웹, 호스트웨이, 넷피아, 오늘과내일 등 쟁쟁한 회사들이 아사달의 KR 도메인 리셀러가 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도 많이 채용했는데 심재춘, 이정록, 나철욱 등 회사의 핵심간부들 중 상당수가 이 당시에 아사달에 입사했습니다.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서 급여도 오르고 직원 복지도 좋아졌습니다. 이때부터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1박 2일로 전체직원 워크숍을 가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웃고 뛰어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신규 사업 진출

회사가 안정되면서 저는 신규 사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도메인 등록과 웹호스팅 서비스를 통해 회사를 키웠지만,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습니다. 회사 이름을 “주식회사 아사달”로 변경하여 신규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인터넷 쇼핑몰, 온라인 게임, 휴대폰 벨소리, 생활정보, 검색엔진 등록대행, 중국 PC방 체인점, 온라인 영화, 인터넷 만화, 텔레마케팅 등 다양한 신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 6월 11일 한 프로그래머의 실수로 인해 아사달 웹호스팅 고객들의 홈페이지 5,867개가 삭제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습니다. 3일 밤낮을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전 직원이 합심하여 데이터를 복구하였지만 회사가 입은 치명적 이미지 손실은 원상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가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신규 사업에 진출하여 성공하면 좋겠지만, 만약 실패하면 새로 진출하려던 분야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업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기 때문입니다. 쇼핑과 게임 등 신규 사업 분야에 적지 않은 자금과 인력,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으나 결과가 미미하여 회사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기존 사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또 성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장은 직원들 앞에서 “할 수 있습니다!”라고 늘 자신 있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실패하면 어쩌지?” 하며 끙끙 새가슴을 앓습니다. 사장은 슈퍼맨이 아닙니다. 사장도 인간이기 때문에 때때로 마음이 약해지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화도 내고, 울기도 합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일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혼자서 내려야 합니다. 저는 강한 사람이지만 당시 신규 사업의 연이은 실패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터널을 헤매는 심정이었습니다. 만약 그 때 제가 좌절했더라면 오늘날 아사달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전이 없으면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습니다. 많은 신규 사업에 도전하여 실패의 쓴 잔을 마셨지만,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여 마침내 아사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초 아사달은 새로 디자인 이미지 소스 개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홈페이지 제작에 필요한 각종 아이콘, 배경, 인물 등 일러스트 이미지 소스를 제작하여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서비스였습니다. 이 디자인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아사달은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재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디자인팀장이었던 김종헌 대리가 이 사업을 맡아서 두세 명의 일러스트 디자이너를 채용하고 디자인정글, 겟화일, 프리진 등의 사이트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매출은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판매가 꾸준히 증가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이 때 디자인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사달은 아직도 도메인 및 호스팅 회사로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행운의 여신은 다행히 아사달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따뜻한 미소를 건네주었습니다.

아사달의 새로운 도약

2005년 3월 12일 아사달은 역삼동을 떠나 가산동 ‘우림라이온스밸리’로 이사를 했습니다. 더 이상 남의 건물에 월세를 살지 않고 당당히 자기 소유의 건물을 분양받아 입주한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넓고 쾌적한 사무실로 이사를 온 직원들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사무실과 회의실을 분리하고, 이른바 ‘나뭇가지이론’과 ‘양떼이론’에 따라 직원들의 자리배치를 했습니다. 저는 풍수지리설을 믿지 않지만 어쩐 일인지 이사를 온 뒤부터 아사달이 하는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저는 두 가지 사업전략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도메인 호스팅 인수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디자인 콘텐츠 개발 전략입니다. 다시 말해 기존의 도메인 및 호스팅 사업 분야에서 다른 회사의 영업권을 인수하여 사업 규모를 키우고, 새로 시작한 디자인 사업 분야에서 대량의 콘텐츠를 개발하여 1위 업체가 되는 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당시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면서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코비스, 나호스팅, 도메인파파, 뉴21, 바다넷, 이대아, 기브유넷 등 도메인 호스팅 업체들의 영업권을 집중적으로 인수했습니다. 또한, 디자인 콘텐츠 소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2005년 45명이던 직원을 2006년 70명, 2007년 100명, 그리고 최근 140명으로 급격히 늘렸습니다. 디자인 개발 분야도 일러스트에서 시작하여 웹디자인 템플릿, 플래시, 사진, 문서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였습니다. 디자인 유통 분야에서는 2005년 10월 10일 디자인몰을 오픈하고, 2006년 디자인몰 리셀러 및 CP를 집중 모집하였으며, 2007년 각종 이벤트를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업계 1위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디소 사이트를 인수함으로써 아사달은 디자인 소스 유통 분야에서 압도적 1위 업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12월에는 올플랜이 운영하던 웹프로그램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이제 아사달은 디자인 콘텐츠뿐 아니라 솔루션 소스까지 판매하는 종합적인 디지털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대외적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2006년 1월부터 사단법인 한국인터넷호스팅협회(KIHA)의 회장을 맡게 되었고, 2007년 10월 한국디자인콘텐츠제작자협회(약칭 CP협회)를 설립하여 회장이 되었습니다. 해외사업에도 눈을 돌려 2006년 4월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와 HTML 코딩 대행 계약을 체결하고, 다음 해 분야를 확대하여 플래시 코딩 및 편집사진을 개발하고 있으며, 2007년 중국 대련 및 연변의 여러 업체들과 디자인 콘텐츠 개발 계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7년 한 해 동안 저는 총 12회의 해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중국, 북한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아사달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아사달의 성장 요인과 경영이념

사람들은 저에게 “성공한 사업가”라고 말합니다. 사업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돈도 많이 벌었고, 자녀도 많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직함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공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욱 멀고 험하기 때문입니다.

아사달의 성장 요인

아사달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했기 때문입니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 기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제가 회사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경영철학입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이 없는 배가 뜰 수 없듯이 고객이 없는 기업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수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자기의 실력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에게 더 빠르고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고객은 최고의 스승입니다. 아사달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고객이 만족하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사달이 지금까지 성장한 데에는 저와 함께 열심히 일한 직원들의 공로가 큽니다. 회사 설립 초기의 어려운 시절부터 함께 고생한 직원들은 물론 최근에 입사한 신입사원들까지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 주고 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또한 우리 아사달이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퇴사자들의 공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함께 아사달의 창립 10주년을 축하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아사달에서 열심히 일했듯이 지금은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사달은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직원 급여를 지속적으로 인상하고, 각종 복지 제도를 도입하며, 직원교육에 힘쓰겠습니다.

아사달의 성장에는 협력사 관계자분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도메인 및 호스팅 업계 관계자님들과 아사달 디자인 CP 및 리셀러 운영자님들, 그리고 아사달을 알고 아사달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국내외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사달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협력사와 서로 돕고 함께 성장하는 ‘상생협력’의 경영원칙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아사달은 이 사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사회라는 숲 속에서 자라는 나무와 같습니다. 숲이 없으면 나무가 자라기 어렵듯이 건전하고 따뜻한 사회가 유지되지 않으면 기업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아사달은 국가에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사회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아사달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아사달의 경영 이념

아사달 창립 10주년을 맞은 오늘 저는 아사달의 3대 경영이념과 5대 경영원칙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먼저 3대 경영이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3대 경영이념은 고객 중심의 서비스 기업, 창조적 혁신 기업, 세계 속의 인터넷 기업입니다. 첫째, 아사달은 고객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입니다. 둘째, 아사달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입니다. 셋째, 아사달은 아침의 땅 코리아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세계 속의 인터넷 기업입니다. 다음으로 5대 경영원칙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5대 경영원칙은 고객만족, 좋은 일터, 이윤추구, 상생협력, 사회환원입니다. 첫째, 아사달은 고객을 주인으로 보고 고객에게 봉사합니다. 둘째, 아사달은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셋째, 아사달은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여 이윤을 극대화합니다. 넷째, 아사달은 협력사와 서로 돕고 함께 성장합니다. 다섯째, 아사달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합니다. 이상 3대 경영이념과 5대 경영원칙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아사달 4대 경영방침을 일부 수정하고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서 앞으로 아사달이 모든 업무에서 일관되게 견지해야 할 확고한 원칙입니다.

아사달이 나아갈 10년

아사달은 세계 속의 디지털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아사달은 도메인, 호스팅, 디자인, 프로그램이라는 4대 서비스를 중심으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황금 사슬로 엮는 골드체인(Gold Chain) 서비스에 주력해 왔습니다. 앞으로 10년간 아사달은 인간의 지식을 디지털 파일로 저장하여 판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디지털 콘텐츠(Digital Contents) 개발 및 유통 서비스에 집중할 것입니다.

디지털 콘텐츠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현재 아사달이 주력 개발하고 있는 디자인 시안, 플래시, 일러스트, 페인터, 편집사진, 단독사진, 문서디자인 등 디자인 콘텐츠뿐 아니라, 프로그램 소스, 문서, 동영상, 전자책, 만화, 사운드, 음악, 영화, 게임, 방송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가 존재합니다. 아사달이 처음부터 모든 분야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는 없겠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사업 분야를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는 그 특성상 무한 복제가 가능합니다. 처음 하나를 제작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완성되면 추가 비용 없이 무한히 복제하여 배포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 사업은 일정 수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이 투입되는 단점이 있지만, 상당한 정도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그 때부터는 비교적 쉽게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사달은 지금까지 30만개 이상의 디지털 콘텐츠 상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앞으로 아사달은 50만개, 100만개, 아니 수천만 개 이상의 디지털 콘텐츠 상품을 갖춘 세계적인 디지털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는 그 특성상 국경이 없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가의 경계는 없습니다. 아사달은 중국, 일본, 동남아,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 지사와 제휴사를 두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할 것입니다. 개발된 콘텐츠는 전자적 형태로 전송되기 때문에 국경의 장벽이 없이 전 세계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국경 없는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아사달은 디지털 콘텐츠라는 상품을 들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 기업이 될 것입니다.

아사달이 디지털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도메인 및 호스팅 사업 부분은 회사의 캐시 카우(cash cow)로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과 타 회사 인수를 통한 빠른 성장이 필요합니다. 디자인 콘텐츠 개발 부분은 대한민국 1위 기업으로서 최고 품질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합니다. 프로그램 개발 부분은 회사의 각종 사이트를 관리 개선하고 자체 솔루션을 추가 개발해야 합니다. 관리자와 총무, 기획 등 경영지원 부분은 이 모든 업무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아사달은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사달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보다 몇 배 이상 더 큰 성과를 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사달은 현재 직원이 140명이지만, 곧 200명이 될 것이며, 오래지 않아 500명, 1,000명, 아니 그 이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아사달은 작년 매출이 60억 원이지만, 올해 80억, 내년에 100억 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500억, 1,000천억, 아니 그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큰 회사로 발전할 것입니다. 회사의 발전과 함께 고객 서비스도 개선되고, 직원 급여와 복지 수준도 더욱 향상될 것이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아사달은 아침의 땅 코리아에서 시작하여 세계 속의 디지털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아사달은 10년 전 한 사람의 꿈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아사달로 모여들어 그 꿈을 함께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불꽃을 머금은 불새와 같이 아사달은 가슴 뜨거운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창공에 가득한 바람의 기운을 타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삼족오와 같이 아사달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여 전 세계에 아침의 밝은 빛을 비추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할 것입니다. 아사달은 지식과 정보, 사랑과 행복을 전 세계에 전파하여 국경 없이 하나로 연결된 세상에서 “디지털로 열어가는 꿈의 유토피아 세상”, 즉 “Digital Dream Utopia”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태초에 빛이 있어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풀과 나무가 자라고 꽃에 나비가 날아드니
찬란한 아침의 태양이 높이 솟아
온 누리에 아침의 밝은 빛을 비추리라.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15일

(주) 아사달 대표이사 서창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