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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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소개

서창녕 사진

아사달 대표이사 서창녕입니다.

학력

  • 서울 대원고등학교 졸업 (1983-1986)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6-1990)
  •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 (1991-1993)
  •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 (1994-1998)
  • 미국 University of Rochester 대학원 박사과정 (1998-2001)

경력

  • (주)아사달 설립 및 대표이사
  • 중국 연길아사달과기개발유한공사 동사장
  • 일본 (주)아사달 대표취체역
  • (사)벤처기업협회 이사
  • 한국인터넷호스팅협회(KIHA) 회장 역임
  •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
  •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창회 부회장
  •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향상장학회 감사

수상내역

디지털콘텐츠대상(대통령상)수상

디지털콘텐츠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수상

중소기업청장 표창 수상

어린 시절

저는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철도청 기관사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농사일과 누에치기를 하셨습니다. 어릴 때는 우리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호롱불을 켜놓고 그림자 놀이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런 문명의 혜택도 받지 못했던 시골소년에게 자연은 가장 큰 스승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 때 어머니께서 자식 교육을 위해 아들 셋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서울에서 단칸방 하나를 구해서 온가족이 어렵게 살았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 서울시 지하철공사에 취직하셨고 어머니께서 공장일을 나가시면서 우리집은 차츰차츰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아껴쓰는 절약정신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저에게 공부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대원중학교와 대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잠도거의 자지 않고 밥만 먹고 공부만 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쓰게 되었지만, 학창시절 내내 전교 1-3등을 했고 마침내 목표로 했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대학원 시절

저의 대학생활은 격동의 1980년대 후반기였습니다.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 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던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최루탄 자욱한 연기를 뚫고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웠습니다. 3학년 때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회장, 4학년 때 사회대 학생회장에 선출되어,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습니다.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학점도 나빠지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몇 달간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나 한 몸의 작은 이익보다는 더 큰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였습니다.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대학 시절에 거의 못 했던 공부를 대학원 시절에 많이 했습니다. 석사논문 "제5공화국의 하나회 인맥에 관한 연구"를 써서 MBC 등 각종 언론에 소개되었고, 박사과정 입학시험에서 서울대 사회대 전체 수석을 차지하였습니다. 성진학원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강사를 하였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서울시 중구청에서 불법주차단속을 하면서 군 복무를 대신하였습니다. 경희의료원 정형외과 전공의(레지던트)이던 이종원을 만나 1997년 4월 결혼하였습니다. 공부를 계속 해보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습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는 뉴욕주 북서부에 있는데,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다행히 학교로부터 박사과정 수업료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까지 받으며,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젊고 유능한 교수들의 지도를 받아 통계학과 게임이론 및 선거정치에 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서툴러 어려움을 겪었으나 차츰 좋아져서 나중에는 미국인 대학생들에게 인기 강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문화와 생활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합리적 행동방식을 배웠습니다.

(주) 아사달

아사달이라는 회사는 제가 1998년 2월 서울에서 설립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이 집에서 컴퓨터 1대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호(SOHO)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뒤 미국유학 중에 회사가 커지면서 2000년 4월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작지만 아담한 사무실을 얻어 여러 명의 직원들을 뽑았습니다. 아사달은 도메인등록, 웹호스팅, 홈페이지제작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탄탄한 인터넷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저는 2001년 5월 미국에서 귀국하여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반지하 사무실에 출퇴근하며,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직원들과 함께 회사 업무에 전념하였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본도 적고 사람도 적었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안고 열심히 일하였으며, 다행히 사업 운도 따라서 아사달은 해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습니다. 2002년 7월에는 ".kr 도메인 공인 사업자"로 선정되어 회사 매출이 커졌습니다. 늘어난 직원들에게 더 넓고 좋은 근무환경을 제공하고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로 이전하였습니다. 2005년 3월에는 서울디지털단지에 500여평 규모의 사무실을 분양받아 이사하였고, 더 많은 직원들을 채용하였습니다. (주)아사달은 기존의 도메인, 호스팅 분야에 덧붙여 새로 디자인 콘텐츠 개발 및 유통 서비스를 시작하여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저는 현재 회사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서 아내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느라 평일에는 가족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지만, 미래의 희망을 안고 오늘도 힘차게 앞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회사 업무가 많아 시간이 없지만, 나와 회사만을 생각하지 않고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을 우리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